고독사 '탈북민 롤모델' 쓸쓸한 장례…하루 9명씩 죽는다.아무도 모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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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89회 작성일 22-12-26 10:07본문
22일 경기 고양시의 한 봉안당에 지난 10월 숨진 채 발견된 탈북민 김모(49)씨의 유골이 봉헌돼 있다. 이병준 기자
“통일의 날 영혼으로라도 고향에서 만나길 빕니다….”
지난 10월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탈북민 김모(49)씨의 유골이 봉헌된 경기 고양시의 한 봉안당. 김씨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두 손으로 잡은 채 탈북민 A씨(59)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항아리와 함께 놓인 영정 속 김씨는 흰 셔츠에 검은 정장을 입고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밝았는데…겨울이 너무 추웠나 봐요.” A씨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의 이웃이었다는 한 탈북민은 “가슴이 아프다”며 “(김씨는) 성공한 정착민이라 내 우상이었다. 이렇게 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쯤부터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빈소에선 화장(火葬)에 앞서 김씨를 위한 제사가 치러졌다. 2평 남짓한 빈소는 탈북민 등 10여명과 향냄새로 가득 찼다. 시신을 인수할 친인척이 없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 김씨의 장례는 서울시가 비용을 지원하는 공영장례 형태로 치러졌다. 상주는 고인이 생전 근무했던 탈북민 지원단체 ‘남북하나재단’ 정인성 이사장과 황유상 통일부 안전지원팀장이 맡았고, 사단법인 돌보미연대 등이 장례 절차를 도왔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오셔서 꿈을 이루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을 줄 압니다. 간절하게 소망했지만 결국 그 꿈을 다 이루지 못한 고 김OO 님의 아픔을 이 사람이 알고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알고 함께 슬퍼하고 있습니다.” 황 팀장이 추도문을 읽어나가는 사이 곳곳에서 숨죽인 울음과 탄식 소리가 오갔다.
이날 오후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선 화장에 앞서 김씨를 위한 제사가 치러졌다. 상주는 정인식 남북하나재단 이사장과 황유석 통일부 안전지원팀장이 맡았다. 사진 독자 제공
김씨는 북한 함경북도 출신이다. 20년 전 홀로 탈북해 국내에서 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던 김씨는 2010년부터 탈북민 전문 상담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다니던 남북하나재단을 퇴사한 건 2017년 12월. 그리고 3년 10개월 만에 김씨는 자신이 살던 서울 양천구의 임대아파트에서 강제 퇴거 절차를 위해 집을 찾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직원들에 의해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김씨의 시신을 부검했으나 ‘사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발견 당시 김씨가 겨울옷을 입고 있던 점을 들어 경찰은 김씨가 사망한 지 약 1년 이상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씨는 2020년 12월부터 아파트 임차료와 관리비를 체납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SH는 지난해 3월부터 보건복지부와 남북하나재단에 관련 내용을 통보했고, 복지부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에 이르기까지 5차례에 걸쳐 김씨의 임대료 체납 사실을 지자체에 고지했지만 어느 것도 김씨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동 주민센터 직원 역시 5차례에 걸쳐 김씨의 자택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문이 잠겨 안내문만 남기고 돌아왔다고 한다.
탈북민들은 씁쓸함을 토로했다. 김모(55)씨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영혼을 죽지 않게 유지하는 것인데, 우리는 각자 남한에 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며 “(탈북민은) 지지기반이 없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삶을 지지해줄 사람이 없는 거다. 이민자도 가족이 있고, 노동자는 친구가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남북하나재단 북한이탈주민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 응답자의 21.9%는 ‘낙심하거나 우울해도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고 답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돕는 돌보미연대 박경조 사무총장은 “(탈북민은) 한국에 올 때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대부분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온다”며 “젊은 사람들도 적응을 못하는 등의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올 하반기 들어 한 달에 세 번씩은 탈북민 무연고 장례를 가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에 9명씩 고독사…사회적 취약계층 집중
현행법은 김씨와 같이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홀로 사망하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로 정의하고 있다. 고독사는 국내에서 증가 추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2021년 경찰청 형사사법정보 약 24만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고독사 사망자는 3378명에 이르렀다. 하루에 9명씩, 아무도 모르게 죽은 셈이었다. 고독사 사망자 중에선 50~60대 남성이 다수를 차지했다. 지난해 기준 고독사 사망자의 절반 이상(58.6%)이 50~60대였고, 고독사 사망자 10명 중 8명(83.3%)은 남성인 것으로 집계됐다. 고독사 사망자들은 주로 주택(50.3%), 아파트(22.3%), 원룸(13%) 등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높다 보니 가족 해체 등으로 가족·지인·친척 등과의 관계망이 없어지고, 실업이나 은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문제, 알코올 남용 등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중복돼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남성의 경우 사회적 관계망이 직장 중심인데, 실직이나 은퇴하게 되면 관계망들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라며 “여성들은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가족이나 지인 등의 강한 관계망을 가지고 있어서 차이가 발생한다. 장애 등으로 활동의 제약을 받게 되면 관계망 단절이 훨씬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관계망을 복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과의 관계망이 사라졌더라도 지역에서 이웃 혹은 사회복지 기관 등과 관계망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부터 9개 시·도에서 고독사 위험 주민을 발굴하고 수시로 안부를 확인하는 등 고독사 예방 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내년 초 고독사 예방·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출처:The Joongang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통일의 날 영혼으로라도 고향에서 만나길 빕니다….”
지난 10월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탈북민 김모(49)씨의 유골이 봉헌된 경기 고양시의 한 봉안당. 김씨의 유골이 담긴 항아리를 두 손으로 잡은 채 탈북민 A씨(59)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항아리와 함께 놓인 영정 속 김씨는 흰 셔츠에 검은 정장을 입고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렇게 밝았는데…겨울이 너무 추웠나 봐요.” A씨가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김씨의 이웃이었다는 한 탈북민은 “가슴이 아프다”며 “(김씨는) 성공한 정착민이라 내 우상이었다. 이렇게 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시쯤부터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빈소에선 화장(火葬)에 앞서 김씨를 위한 제사가 치러졌다. 2평 남짓한 빈소는 탈북민 등 10여명과 향냄새로 가득 찼다. 시신을 인수할 친인척이 없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된 김씨의 장례는 서울시가 비용을 지원하는 공영장례 형태로 치러졌다. 상주는 고인이 생전 근무했던 탈북민 지원단체 ‘남북하나재단’ 정인성 이사장과 황유상 통일부 안전지원팀장이 맡았고, 사단법인 돌보미연대 등이 장례 절차를 도왔다. “목숨을 걸고 사선을 넘어오셔서 꿈을 이루시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셨을 줄 압니다. 간절하게 소망했지만 결국 그 꿈을 다 이루지 못한 고 김OO 님의 아픔을 이 사람이 알고 여기에 모인 모든 사람이 알고 함께 슬퍼하고 있습니다.” 황 팀장이 추도문을 읽어나가는 사이 곳곳에서 숨죽인 울음과 탄식 소리가 오갔다.
이날 오후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선 화장에 앞서 김씨를 위한 제사가 치러졌다. 상주는 정인식 남북하나재단 이사장과 황유석 통일부 안전지원팀장이 맡았다. 사진 독자 제공
김씨는 북한 함경북도 출신이다. 20년 전 홀로 탈북해 국내에서 간호대를 졸업하고 간호사로 일하던 김씨는 2010년부터 탈북민 전문 상담사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김씨가 다니던 남북하나재단을 퇴사한 건 2017년 12월. 그리고 3년 10개월 만에 김씨는 자신이 살던 서울 양천구의 임대아파트에서 강제 퇴거 절차를 위해 집을 찾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 직원들에 의해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김씨의 시신을 부검했으나 ‘사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시신이 너무 오래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발견 당시 김씨가 겨울옷을 입고 있던 점을 들어 경찰은 김씨가 사망한 지 약 1년 이상이 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김씨는 2020년 12월부터 아파트 임차료와 관리비를 체납하기 시작한 것으로 조사됐다. SH는 지난해 3월부터 보건복지부와 남북하나재단에 관련 내용을 통보했고, 복지부는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에 이르기까지 5차례에 걸쳐 김씨의 임대료 체납 사실을 지자체에 고지했지만 어느 것도 김씨의 죽음을 막지는 못했다. 동 주민센터 직원 역시 5차례에 걸쳐 김씨의 자택을 방문하기도 했지만, 문이 잠겨 안내문만 남기고 돌아왔다고 한다.
탈북민들은 씁쓸함을 토로했다. 김모(55)씨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영혼을 죽지 않게 유지하는 것인데, 우리는 각자 남한에 와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다”며 “(탈북민은) 지지기반이 없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삶을 지지해줄 사람이 없는 거다. 이민자도 가족이 있고, 노동자는 친구가 있지만 우리는 그런 게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남북하나재단 북한이탈주민실태조사에 따르면 탈북민 응답자의 21.9%는 ‘낙심하거나 우울해도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고 답했다.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돕는 돌보미연대 박경조 사무총장은 “(탈북민은) 한국에 올 때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대부분 몸과 마음이 피폐해져서 온다”며 “젊은 사람들도 적응을 못하는 등의 이유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올 하반기 들어 한 달에 세 번씩은 탈북민 무연고 장례를 가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루에 9명씩 고독사…사회적 취약계층 집중
현행법은 김씨와 같이 ‘가족 등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홀로 사는 사람이 자살·병사 등으로 홀로 사망하고, 시신이 일정한 시간이 흐른 뒤에 발견되는 죽음’을 고독사로 정의하고 있다. 고독사는 국내에서 증가 추세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7~2021년 경찰청 형사사법정보 약 24만건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고독사 사망자는 3378명에 이르렀다. 하루에 9명씩, 아무도 모르게 죽은 셈이었다. 고독사 사망자 중에선 50~60대 남성이 다수를 차지했다. 지난해 기준 고독사 사망자의 절반 이상(58.6%)이 50~60대였고, 고독사 사망자 10명 중 8명(83.3%)은 남성인 것으로 집계됐다. 고독사 사망자들은 주로 주택(50.3%), 아파트(22.3%), 원룸(13%) 등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가 개인주의적 성향이 높다 보니 가족 해체 등으로 가족·지인·친척 등과의 관계망이 없어지고, 실업이나 은퇴 등으로 경제적 어려움과 정신적 문제, 알코올 남용 등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중복돼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남성의 경우 사회적 관계망이 직장 중심인데, 실직이나 은퇴하게 되면 관계망들이 끊어지게 되는 것”이라며 “여성들은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가족이나 지인 등의 강한 관계망을 가지고 있어서 차이가 발생한다. 장애 등으로 활동의 제약을 받게 되면 관계망 단절이 훨씬 더 빨리 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어려움이 있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관계망을 복원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가족과의 관계망이 사라졌더라도 지역에서 이웃 혹은 사회복지 기관 등과 관계망을 연결하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월부터 9개 시·도에서 고독사 위험 주민을 발굴하고 수시로 안부를 확인하는 등 고독사 예방 사업을 시작한 데 이어, 내년 초 고독사 예방·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해 발표한다는 계획이다.
출처:The Joongang 이병준 기자 lee.byungju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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